조각보, 땀과 땀 그리고 2023 나의 창작노트규방공예가 안희영 안희영 님을 만나기 전에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은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그 중에 전통 자수를 해 오신 배경과 한국 전통 자수가 지닌 매력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2023 나의 창작노트 참여 작품은 전통 자수가 아니고 규방공예, 조각보 발입니다’ 라고 답문을 받았다. 단호한 문장과 정확한 구분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기도 전에 신뢰감이 드는 정확성이었다. 카페인보다 빠르게 정신을 깨우는 단호함이었다. 규방공예와 전통 자수를 한데 뭉뚱그리지 않기로 하고 인터뷰에 임하도록 해야겠다, 그 세밀함에서부터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들었다. 규 방 공 예 엄격한 유교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규방에서 생성된 공예 장르이다.규방은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었던 양반집 규수들의 생활공간이었다. 규방에 모인 여인들이 바느질(침선)로써 전통자수, 전통 매듭을 짓고 천연 염색하던 것을 응용하여 바늘방석, 다양한 보자기, 주머니, 노리개 등 생활용품과 의복을 만들던 일에서 비롯하였다.(위키백과를 편집) 보자기가 연이어 펼쳐졌다. 안희영님 손에서 그 손으로 만들어진 고운 것들이 보자기 위로 또다시 펼쳐진다. 단지 곱기만 한 것들이 아니다. 우리 생활에서 쓰려고 생긴 것들이다. 바늘방석, 주머니, 노리개, 그리고 드디어 조각보다. 각양각색이라는 네 글자로는 한참 모자랄 다채로운 조각보들이 펼쳐 쌓인다. “여기 보이는 이 침질은 *세땀 상침.” 상침, 영락, 유소…… 귀는 말을 쫓아가느라 바쁘고 눈은 보를 쫓아가느라 바쁜데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마음 조각들은 한 겹 한 겹 쌓이는 조각보들 위로 안정감 있게 얹힌다. (*세땀 상침: 박음질을 세 땀씩 하고 간격을 띄운 침질을 이르는 말) 혹시 조각모음을 실사로 볼 수 있다면 이와 비슷할까? 하드디스크는 때때로 조각모음이 필요하다. 조각모음을 실행하면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이곳저곳에 저장되어 버린 단편화 파일들을 정리해 준다. 조각모음을 하고 나면 작업 처리가 빨라진다. 나는 조각모음을 실행시킬 때마다 안정감을 받아서 좋았다. 하드디스크 어딘가에서 돌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단편화 파일 조각이 모여드는 모양은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조각보를 보면서 그 조각모음을 연상한 것이다. 물론 우리 마음은 하드디스크와 어울리진 않는다. 그래도 창작이란, 예술이란, 어쩌면 보는 것만으로도 조각모음인지 모르겠다. 안희영 님은 조각모음이라는 표현 대신 그것을 수련이라고 했다. 마음을 수련하는 방법과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 마음 다스리는 일이 어려운 이유다. 자신에 게 꼭 맞춤인, 내 것인 수련 방법과 형태를 찾는데도 지난한 시간, 성의, 과정이 필요하니까. 안희영님도 지난한 시간과 성의와 과정을 거쳐 규방공예로 이어져 간 길을 찾았다고 했다. 사진 제공: 안희영 조각보들을 본 다음에 본격적으로 창작노트 참여 작품인 대형 조각보 발 작업 과정을 들었다. 아름다운 의정부 시의 가을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배색이었다. 가을에 자연이 보여주는 가라앉은 느낌을 주는 계열, 하늘빛 조각 몇 개, 스산함을 담은 차갑고 어두운 색 조각도 있는데 어째선지 조락이 느껴지지 않고 화려함이 깃들어 있었다. 창에 조각보 발을 걸었을 때 빛과 바람이 든다고 상상하자 더 화려했다. 조각보를 만드는 과정과 순서는 받아 적자면 단순하다. 주제를 잡는다. 색감을 선택한다. 조각보 발을 만들기로 정한다. 바느질 기법을 정한다. 모티프를 연결한다. 그러나 조각을, 모티프를 문자 그대로 한 땀 한 땀 그것도 손으로 연결한다는 것은, 손쉽고 단순하게 정리할 성질이 아닌 것이다. 심지어 시간이 덜 걸리고 더 걸리고 이런 작업도 없다고 하셨다. 계기라든가 시작을 논하기도 어색하다. 조각보 발 작업의 시작은 어디인가. 자투리 천, 그 조각의 시작은 어디인가. 규방공예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에디터는 조각나기 전 일정 크기로 자르는 천 단위를 상상하지만 안희영님은 염색 과정을 말씀하셨다. 규방 공예가로서 시작은 전통 차, 다도를 배우면서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도 이전에 봉사 활동이 있었다. 아기 씻기는 활동을 다니며 아기를 위한 물건들을 바느질로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했다는 시간, 이것이 후에 의정부문화원에서 강좌를 한 세월로 이어졌다. “정체를 안 좋아해요. 정체되지 않으려고 안주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배우려고 했어요. 하나를 배우면 이것이 필요하고, 이것을 배우고 나면 저것이 또 필요하니 연결이 될 수밖에 없어요.” 옷을 지으면 그 옷에 어울리는 노리개가 있어야 한다. 노리개를 만들려면 전통 매듭을 알아야 한다. 안희영 님은 매듭만 10년을 익히셨다고. “애착은 바느질에 있어요. 내 것이 아닐 때는 진척이 안 되었는데 바느질은 너무 재밌는 거예요.” 바느질은 안희영 님을 선생님으로 만들었고 소통의 도구이며 명상이었다. 무슨 일이건 바느질하다보면 별거 아닌 일로 녹았다고 했다. ‘이거 아니면 안 돼’ 하던 일도 ‘이것도 저것도 괜찮아’로 포용하게 됐다. 지구촌이 코로나를 앓던 시기도 안희영 님에게는 한편 생산성이 오른 시간이었다. 깊어지고 넓어지고 만들고 알리게 된 시간. 매듭, 침선, 금박, 시작도 끝도 없어 보이고 모를 이름도 넘치는 세계 같은데 정작 옛 시절엔 규방공예라는 이름도 없었다고 하시니, 모든 것이 변한다. 한 세계가 세상에서 의미를 인정받으면 세상은 이름을 돌려준다. 이제 알겠다. 창작 과정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나의 창작노트’는 창작 과정을 지원하는 사업이어서, 에디터는 빠짐없이 창작자들에게 과정에 관한 사유를 물었다. 이 질문은 활짝 열린 문이었던 모양인지 창작자마다 답변 방향이 달랐고 때론 이 질문을 어렵게 받아들이기도 했었다. 고쳐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일에 어떤 의미를 어떻게 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