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빼뻘마을 프로젝트> 사전 워크숍 4회차 현장 속으로

<2023 빼뻘마을 프로젝트> 사전 워크숍 4회차 현장 속으로 커뮤니티스페이스 '송산반점'​<2023 빼뻘마을 프로젝트> 사전 워크숍이 빼뻘마을에 위치한 커뮤니티스페이스 ‘송산반점’ 에서 6월 24일부터 7월 5일까지 총 4회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빼뻘마을 프로젝트> 는 빼뻘마을을 문화예술로 변화시키기 위한 마을공동체기반 공공예술활동 공모사업이다.​ 7월 5일 이뤄진 이번 회차는 사전 워크숍의 마지막 일정으로, 두레방과 빼뻘마을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진 뒤, 팀별 프로젝트 최종 보완 및 발표, 피드백의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의정부에서 10년 넘게 살았으나 이번 사업을 통해 빼뻘마을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번 기회로 새롭게 알게 된 마을이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감을 안게 되었다. 또, 그 이야기들을 통해 워크숍 참여자 분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하셨을 지 궁금해졌다. 빼뻘마을 골목​워크숍은 커뮤니티스페이스 ‘송산반점’ 에서 이루어졌다. 송산반점 내부 짜장면 집을 하나의 커뮤니티 스페이스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크게 리모델링하지 않고 공간 내의 짜장면 집 분위기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정상운영을 할 것 같은 외관과 소통하기 좋은 내부가 합쳐진 매력적인 공간이었다.​​사전워크숍 4회차 멘토 소개​​​- 김현주 (빼뻘프로젝트 감독)​- 윤현옥 (문화기획자, 아트큐브과천감독)​- 김은진 (두레방 원장)​​​두레방과 빼뻘마을 이야기출처: 두레방시작은 두레방의 원장님에게 기지촌 이야기와 두레방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기지촌과 기지촌여성의 삶에 대해서, 두레방&빼뻘마을과 관련한 이야기였다.​​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기지촌 여성 (미국 위안부) 의 삶 –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는 두레방을 창시하고, 젊음을 바쳤던 문혜림 선생의 삶이 딸 문영미씨를 통해 자전적 이야기로 나온 책의 제목이다. 문혜림 선생은 80년도에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왔고, 이후 알코올중독, 마약 상담 요청에 따라 먼저 동두천 미군부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주변을 왕래하는 여성들을 보게 되었고, 그 여성들이 미군들을 상대하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문혜림 선생은 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두레방 창시의 계기가 되었다.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라는 이름으로 책이 만들어진 것은 이주민이었던 문혜림 선생의 이야기와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가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기지촌에 대해​20세기 한반도의 역사는 미군부대와 상관관계가 깊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들이 한국에 주둔을 하며 그 기지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이 되었는데, 빼뻘마을도 마찬가지로 캠프 스탠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이 된 것이다. 이러한 곳을 ‘기지촌’ 이라고 불렀다. 당시 그 안에 다양한 많은 것이 생겨났지만, 그 중 클럽이 많이 생겼다. 미군들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하면, 미군들이 고향 생각을 하거나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며 주둔을 할 것이니 그들을 위해 클럽이 생겨난 것이다. 그 이유로 클럽, 유흥을 위한 공간은 기지촌에 공식적으로 허가가 되었다.​​기지촌 여성의 삶에 대해​​1960년대 기지촌은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존재했던 잡지 ‘신동아’ 특집기사는 한국이 경제성장과 외화벌이를 할 수 있었던 것에 기지촌 여성들이 준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컸다는 것을 알려주었다.​이들 양공주들이 갖는 거대한 힘이 있다. 음지에 피어 있는 이들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우리 국가정책의 지상과업이 되다시피 한 외화획득의 한 역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달라는 전국의 달라 암시장을 좌우하며 국가의 비공식적인 외화수입으로 가산되는 큰 영향력을 가졌다.이들 양공주의 존재는 무시 못 할 우리 국민의 경제적 자원으로까지 부각되는 것이다. (박동은, 1966:279-280) 한때 기지촌에서 여성들이 벌어들인 외화가국민 총 생산의 25%를 차지하고지역경제의 60% 이상을 부양하여,국가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으나국가는 결국 이들을 돌보지 않았다.(강의 중 내용)​​90년대 중순부터는 E-6비자를 소지한 이주여성이 기지촌으로 유입되었다. 한국이 발전하며 기지촌에는 한국여성들이 서서히 떠나게 되고 그 자리를 이주여성들이 채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지촌 이야기는 특정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빼뻘마을 이야기 빼뻘마을은 본래 전주 이씨가 소유하고 있던 땅이었다. 시간이 흘러 점차 다른 이들이 빼뻘마을에서 집을 짓거나 장사를 하며 터를 잡게 되며 빼뻘마을이 형성하게 된 것인데, 다른 이들이 와서 장사를 하고 집을 짓는 것을 초반부터 제재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 전주 이씨 측에서 땅을 사라는 요구를 했고, 이미 터를 잡아 생활하던 이들과 부딪히게 되었다. 이후 외부인들이 땅을 사게 되었고, 땅값을 치를 형편이 되지 않는 빼뻘마을 주민들의 경우 세입자가 되거나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여러가지 빼뻘마을 이름의 유래 빼뻘보관소 창문 ​빼뻘마을은 이름도 독특하게 다가와 이름의 유래도 독특할 것 같아 궁금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었고, 여러가지 설은 들을 수 있었다. 설 1,근처에 ‘배 밭’ 이 많아 ‘뺴뻘마을’ 이라고 지어졌다. ‘배 밭’ 에서 ‘빼뻘’ 이 된 것은 발음이 어려워 배 밭, 배 밭 하다가 ‘빼뻘’ 이라는 발음으로 변화된 것이라는 이야기. 설 2,캠프스탠리와 마을이 있는 일대에 ‘뺑대’ 라고 불리던 식물이 많아 ‘뺑뻘’ 이라 불리다가 ‘빼뻘’ 로 불리게 된 이야기. 설 3,뻘에 한 번 들어가면 발을 빼기 힘든 것처럼 ‘한번 들어가면 빼도 박도 못한다’ 라고 해서 ‘빼뻘’ 이라고 불리게 된 이야기. 설 4,임진왜란 때 ‘백병전’ 을 했던 곳이라 ‘빼뻘’ 이 되었다는 이야기. 두레방 이야기 두레방의 설립취지는 다음과 같았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기지촌 여성들이 함께 모여 자존감을 회복하며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는다."​ 두레방은 성매매운동의 시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2004년도에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이 되면서 상담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맞추어 ‘성매매 피해여성을 위한 상담소’ 로 2006년도에 설치신고를 하게 되었다. 두레방 소개 두레방은 기지촌에서 발생하는 성매매 문제들, 군사주의로 인한 폐해들과 기지촌 성산업에 유입되었던 고령의 기지촌 여성들 및 외국인 여성, 이주여성과 함께 한국여성들도 케어하고 있다. -사무국과 두레방 상담소 의정부에 있는 두레방은 사무국 및 두레방 상담소이다. 기지촌에서 일하는 한국여성과 이주 여성의 인권을 위한 활동, 현장을 알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공감, 공유, 공조가 주된 활동이 된다. 그래서 전문상담, 긴급구조, 쉼터연계, 의료와 법률 지원, 아웃리치 (직접 여성을 만나러 가서 지원하는 활동), 프로그램운영, 캠페인 활동, 출판, 영상자료 제작, 활동보고서와 뉴스레터 발간, 연대활동, 각종행사 등을 한다. -여성 인권 상담센터 ‘품’​‘품’ 이라는 이름은 ‘품앗이’ 라는 단어에서 따왔으며, 한국여성의 성착취 피해 보호를 위한 상담과 관련 지원 활동하는 상담센터이다. -두레방 쉼터​2009년 개소되어 긴급구조 및 안정적인 쉼터를 지원하고 (불법적인 성매매 강요나 폭행, 노동법 위반 등으로부터 이주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 귀국지원을 한다. (다시 귀국을 원하는 이주여성 대상)또, 각종 필요한 법률, 의료, 심리치료 프로그램 활동을 지원하고 직업 훈련 프로그램, 전문상담 및 통역, 치료회복 프로그램, 연대활동 등을 한다. 두레방 원장님의 메시지 두레방 김은진 원장님은 마지막으로 기지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공론화, 대중의 폭넓은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며 기지촌의 문제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 빼뻘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하려고 하는 분들이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다. 최종 프로젝트 발표 #안숙영 #톱니 팀 #감성_의적 팀 이후 최종 발표시간을 가졌다. 전체 팀이 이제까지 준비한 프로젝트 계획서 최종본을 돌아가며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빼뻘마을’ 이라는 마을 이름을 내세운 사업인만큼, 지역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밑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각 팀의 프로젝트 목적과 의의, 빼뻘마을에서 해야만 하는 이유 등에 대하여 다시 짚어보며 실제 진행해야 할 사안에 대한 하나의 계획서이기 때문에 현실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왜, 빼뻘마을에서. (빼뻘마을과의 연관성)왜,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지. (프로젝트 의의) ​ 빼뻘마을 프로젝트 사전워크숍 fin 필자는 미군부대와 의정부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빼뻘마을에 대해서는 몰랐다. 이번 기회로 자세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의정부 시민으로서 한 단계 레벨업한 기분이었다. <2023 빼뻘마을 프로젝트> 의 사전워크숍은 취재라는 목적으로 가게 되었지만 워크숍 현장에서는 강의와 최종발표에 참여자의 입장으로 임했다. 직접 빼뻘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면 어떤 프로젝트 기획을 했을 지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피드백을 받는 단계에서는 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에 앞선 기획단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한 자리에서 공유하는 피드백의 시간이 프로젝트 성장에 있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렇게 해서 4회차 워크숍이 마무리 되었다. 그곳에 살아가고 터전을 가꾸고 계시는 분들과 빼뻘마을을 문화예술로 물들이고자 하는 분들의 긍정적인 소통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예술로 변화된 빼뻘마을의 모습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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