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다름, 모든 낯섦', 장터와 공연, 빼뻘이 담고 있는 것들

2023 빼뻘마을 프로젝트 모든 다름, 모든 낯섦장터와 공연, 빼뻘이 담고 있는 것들 “고산동을 간다고?” 다음 취재 장소를 주변에 알리니 다들 의아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버스로 단 20분이면 도착하는 근거리에 살지만, 주변 누구도 그곳을 방문해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월 편집국 회의를 통해 빼뻘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모습이 되려 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빼뻘마을은 그렇게 미지의 영역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이번 취재가 기대되는 한편, 글에 잘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며 긴장 속에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고산동. 빼뻘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해 농협 건물을 끼면 바로 한적한 마을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 한참 오르막을 걸으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굽은 허리로도 저보다 빠르게 앞서 나가시는 어르신을 두어 번 지나 보내고서야 저는 이번 행사를 대표하는 포스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생활감 넘치는 모습, 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고양이들, 그리고 정다운 오브제들이 한데 모인 ‘빼뻘마을’이었습니다. 단 한 장의 이미지만으로도 이 공간을 잘 설명한다고 느꼈습니다.​​“아가씨! 어디 가는 거야!” 그렇게 한참 마을 주변을 구경하며 걷던 중, 어르신 한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바깥사람 같은데 어쩐 일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를 물어보셨습니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관심이었습니다. 저는 목에 건 에디터증을 꺼내 보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오늘 마을에서 열리는 장터와 축제를 보고, 글로 담기 위해서 왔다고요. 그러자 조금 먼 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말을 붙이시던 어르신은 따라오라는 듯 제게 손짓을 하셨습니다. “거기 가면 먹을 것 많아. 이따 무슨 잔치를 한다는데, 사람 많아. 언니도 가. 나 지금 거기 가는 거여. 조심하고.” 꽤나 가파른 비탈길을 함께 내려가며, 미로 같은 골목을 구경했습니다. 그라피티와 영문 간판이 즐비한 길이었어요.​ 그렇게 몇 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말 그대로 잔치의 현장이었습니다. 남녀노소,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많은 주민들과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께서 직접 만드신 부침개는 인기가 많아 금방 마감되었을 정도였죠. 천막 아래 도란도란 둘러 앉은 사람들은 각자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오늘 축제에 대한 기대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춤추고 노래를 해야 잔치지!” “이따 다 할 거예요.” “그래? 재미있겠구만.” 그 대화를 슬쩍 엿듣다, 그만 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1983년도, 이 동네에 처음 왔어요. 그때가 올림픽 전이니까 내가 (여기 온 지) 딱 40년 됐어요. 그때 당시에는 자동차가 몇 대 있었냐. 포니하고 몇 대밖에는 없었어요. 지금은 백 대도 넘는 것 같아. 그때는 동네를 다 통틀어도 차가 일고여덟 대밖에는 없었어. 이차선 도로였고, 그렇게 발전이 없었어……”​마을 이장님의 오프닝 멘트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빼뻘마을로 넘어온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셨습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기지촌의 문화를 잘 담고 있던 빼뻘마을의 이야기 끝에는 조용히,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전하셨습니다.​​“제가 끝날 때까지는 사회를 봐야 해요. 제가 말을 못해도 여러분 다들 이해를 해 주시고, 여러분 다 오늘 즐겁게 노시다 가시면 돼요. 무슨 말인지 알죠?”​많은 사람이 모인 앞에서 긴장이 된다며 떨린 기색을 보이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휘어잡는 능청만큼은 1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여러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마을 주민 박복순 할머니의 축시 ‘나의 고향 빼뻘’로 시작해 감성의적의 ‘빼뻘마을 고유종 나무’, 톱니의 ‘기억을 전하는 소리 삐-삐-라디오’, 스파크 난타의 ‘두드리다’ 그리고 홍주성과 우리끼리의 ‘노래는 날개가 되어’까지 풍부한 퍼포먼스를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공연과 퍼포먼스는 빼뻘마을의 시간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들, 이 마을 사람들과 공존하며 경험한 것들,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까지요. 공연이 한창이던 곳 옆으로는 다양한 체험을 위한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차(茶)와 다식 이야기’는 쌀쌀하고 궂은 날씨에 몸을 녹이고, 서로 반갑게 인사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차 한 잔, 노래 한 소절. 난타 공연팀의 신나는 음원을 듣고 뒤늦게 찾아온 어르신들 모두 주변에서 챙겨 드린 차 한 잔을 홀짝이며 박수를 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 봤어? 저기에서 해.” 따뜻하게 멋을 부린 어르신들은 일제히 머플러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서, 저는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빼뻘마을과 두레방우리 마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바라는 것들을, 각자 적어 보고 함께 얘기해요!좋은 의견은 작은 선물 드려요! 그 아래에는 빼뻘마을 주민들의 소원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마을 건너편에 방문객 주차장 만들어야 합니다’, ‘깨끗한 공중 화장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등 마을 인프라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간결하고 절실한 ‘약국’과 ‘병원’ 두 글자에 눈길이 갔습니다. 대부분의 마을 인구가 고령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활발하지만 잠잠한 이 동네에 가장 필요한 시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 판넬 앞에 서서 고운 염원들을 훑다 보니, 바로 옆에 마련된 ‘복실복실해지는 빼뻘마을’ 터프팅건 활동에도 눈길이 갔습니다. 저보다 한참 작은 아이가 도움을 받아 터프팅건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함께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에, 저는 잠시 메모장을 넣어 두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잡아 보는 터프팅건은 참으로 생소했습니다. 아래 달린 발을 천에 잘 밀착해야 했어요. 그렇게 고정을 한 뒤, 생각보다 강한 힘으로 누르며 쉬지 않고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고르게 잘 박히죠?” 군더더기 없는 시범에 저도 여러 번 도전해 봤지만, 그렇게 예쁘게 모양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것 참 어렵네요.” 멋쩍게 웃으니 천의 앞면으로 이동해 제가 박은 모양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도 앞에서 보는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조금 더 신경 써서 박아 줘야 하는 거죠. 아까 설명했던 것처럼 단단하게 고정을 하고,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해요.” 저는 그 설명이 빼뻘마을과 참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문화 체험과 잘 가꿔진 전시 공간, 그리고 그 앞에는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들과 지금까지의 빼뻘마을을 상징하는 어르신들. 단단하게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들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손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빼뻘마을 축제와 장터는 무엇보다 ‘지금의 빼뻘마을’을 잘 보여 주는 행사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처럼, 두텁게, 켜켜이 쌓인 과거 사이에 새로운 현재가 섞여 있었습니다. 여전히 마을에 머무르는 오랜 주민들과 앞으로 그곳에서 성장할 어린아이들,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느릿하지만 생동감 있는 곳이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마을의 곳곳을 구경했습니다. 가게들은 대부분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창고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한참 동네를 걷다 우연히 들었던 말을 아마, 꽤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옛날에 우리 아저씨가 살아 있을 적에……”​개개인의 오랜 삶을 간직하고 있는 빼뻘마을이 다르지만 낯선, 매일같이 익숙한 공간으로 향유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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