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뻘마을 프로젝트, ‘모든 다름 모든 낯섦’ 전시회 열려 “예술가들이 빼뻘마을에 온기를 불어넣었어요. 미군기지가 주었던 화려했던 불빛이 아닌 주민 스스로가 낼 수 있는 불빛으로요. 이제 미군기지가 아니어도 우리 주민들에겐 소통할 이야깃거리가 많아졌어요.”빼뻘마을 주민 황재영 씨는 빼뻘마을 프로젝트 ‘모든 다름 모든 낯섦’의 전시회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그녀는 10여 년 전 빼뻘마을에 정착했다. 미군기지 캠프스탠리의 병력이 다 빠져나간 후에도 클럽과 여러 상점의 불빛은 적막한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려한 불빛도 그 자취를 감추고 결국 기지와 미군을 생활 기반으로 삼던 주민들의 삶도 같이 쇠락했다.그렇게 상실감이 자욱했던 이들의 거리는 어느덧 예술가라는 새로운 발자국이 찍히고, 시간이 흘러 ㅃㅃ작은마을축제도 3회째 맞이하게 되었다. 2023 빼뻘마을 프로젝트 ‘모든 다름 모든 낯섦’ 전시회는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예술공간 송산 반점과 ㅃㅃ보관소, 빼뻘마을 회관에서 진행되었다. 도시재생 문화 사업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마을 주민과 함께 삶의 터를 예술로 엮어가는 프로젝트가 바로 빼뻘마을 프로젝트다.지난 5월 1일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공모를 통해 선정된 8명의 예술가가 3팀으로 나뉘어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했다. 지역과 빼뻘마을 주민과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과정 중심의 프로젝트인 만큼 이들은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5일까지 4회에 걸친 워크숍을 토대로 마을 프로젝트의 지향점과 공동체 예술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등 총 4개월의 여정을 통해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낯섦’은 다름을 알아차리는 신호다. ‘다름’은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고 그 다름의 깊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이곳 빼뻘마을에서의 예술의 역할이다.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현주 작가는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깊게 바라봐야 하고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빼뻘마을 프로젝트는 마을을 이루는 수많은 존재들의 다름을 인식하고 자세히 관찰하여 낯설게 바라보는 것을 지향한다. 이는 빼뻘마을 프로젝트 ‘모든 다름 모두 낯섦’ 전시회의 의미이기도 하다.전시회의 첫날인 지난 14일에는 빼뻘마을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현주 작가의 안내로 전시 투어가 펼쳐졌다.송산반점 마을 프로젝트의 거점 공간인 송산반점이 전시 투어의 첫 번째 장소다. 우산을 쓴 여러 명의 관람객이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에 길을 내주며 송산반점의 건물 외벽에 전시된 ‘빼뻘마을의 추억’에 시선을 모았다. 이 작품은 빼뻘마을 주민들의 오랜 터전인 마을에서의 추억과 이야기들을 꺼내 주민들이 직접 스케치한 후 작가와 함께 실그림 터프팅(여러 가닥의 실을 수놓는 직조 기법)으로 협업한 작품이다. 엄마와 나를 그린 마을 주민 박복순 씨의 터프팅에서부터 평생 양복점을 운영해 남자밖에 그리지 못한다는 전외순 씨의 이야기를 비롯해 빼뻘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길고양이의 모습까지 마을 주민 8명의 이야기가 2m 프레임 안에서 빼뻘마을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엮였다. 벽면에는 이들의 협업과정을 볼 수 있게 QR코드를 배치했다. 안숙영 작가가 마을주민과 협업한 ‘빼뻘마을의 추억’을 설명하고 있다. 도예와 터프팅 중심의 생활문화 작업을 진행하는 안숙영 작가는 “마을 주민들의 추억과 이야기가 잘 구현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면서 “협업을 통해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삶의 깊이를 만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송산반점 내부에는 예술가와 마을 주민이 협업을 이룬 여러 점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안숙영 작가와 주민이 협업한 식기 도자기를 비롯해 주민 각자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리놀륨 판에 새겨서 찍는 판화와 ‘좋아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창작된 주민들의 시가 전시되고 있었다. 김현주 작가는 “빼뻘 안에 고정되어있는 주민의 삶에 다양한 문양과 색을 접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이곳에서의 예술가의 역할인 것 같다”며 주민과 협업한 작품의 여정을 설명했다.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흩어졌다 모이는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연결하고 서로의 다름이 맞물려 움직인다.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한 사람의 집합체’로 존중하는 공통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모든 과정에서 각자 자기만의 온전한 의미와 즐거움이 존재한다. 문화예술 프로젝트팀 ‘톱니’(정다운×조은지×황소연) 송산반점 한편에는 문화예술 프로젝트팀인 톱니(조은지, 정다운, 황소연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들이 추구하는 예술적 구현을 위해 그 첫걸음으로 빼뻘마을 산책을 선택했다. 산책을 통해 만난 마을 주민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 장소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그림을 그려 송산반점 내부에 매달았다. 회차를 반복할수록 송산반점 안에는 빼뻘마을 주민과 이야기를 나눈 장소의 그림이 다양하게 달렸고 주민과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과 그림을 사이를 털실로 연결해 빼뻘마을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바닥에는 빼뻘마을에서 볼 수 있는 화분 등이 놓여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압축된 빼뻘마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들게 했다. 이 작품은 ‘오랜 이웃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관람객을 만났다. 문화예술 프로젝트팀인 톱니(조은지 정다운, 황소연 작가)가 작품의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각자 자기만의 온전한 의미와 즐거움으로 각기 다른 경험 그 자체가 우리 톱니가 정한 지역 문화예술의 방향성”이라 밝힌 이들은 “같은 것을 바라보고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옆에 모인 수많은 사람이 서로를 개별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이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마을을 이루는 수많은 존재들의 다름을 인식하고 낯설게 바라보며 그 안에서 연결을 이루는 이 전시의 표본을 제시했다. 특히 이들은 빼뻘마을 주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느낀 점과 이야기들을 이날 오후에 라디오 형식으로 쏟아낼 계획도 함께 밝혔다.ㅃㅃ보관소 투어의 두 번째 장소는 송산반점 맞은편에 있는 ㅃㅃ저장소다. 이곳은 김현주 작가가 2019년부터 빼뻘마을에서 모은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장소다. 김현주 작가는 과거 양복점으로 운영됐던 이곳을 구석구석 정리하다 오래전 빼뻘마을에서 찍었던 사진을 비롯해 지폐와 각종 안내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폐에는 여러 낙서가 발견됐는데, 미군의 정서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뿐 아니라 수많은 욕도 가득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벽 한쪽에는 김현주 작가가 만나왔던 빼뻘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마을 주민과 협업한 여러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현주 작가는 “빼뻘마을의 기억과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공유하고 시각화하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있다”면서 빼뻘마을의 역사성을 지닌 마을 주민과의 협업과 그 과정 또한 고민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마을회관 우리의 여정이 처음부터 행복의 과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빼뻘마을의 첫 인상은 상실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크숍과 작업을 통해 작업을 바꿀 계기들을 많이 얻었다. 주민분들의 얼굴에 있는 것은 잃어버린 과거나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행복한 지금이 전부라는 것을. 그리고 한동안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비어있던 공간 속에 관한 이야기는 맥을 잃어갔다. 지금은 과거가 되어버린 과거의 빼뻘과 지금의 빼뻘은 천지 차이가 되었으며 이와같이 우리의 모든 설렌 추억을 기억하고 우리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은 주민들과 있었던 일들이 휘발되지 않도록 각인하고자 이런 영상을 만들었다. -감성의 적, 믹스미디어(권도윤×김기원×정보람×황세연 작) 세 번째 투어 장소는 고산경로당 2층에 있는 마을회관이다. 마을 대부분의 행사와 모임이 이루어지는 빼뻘마을 회관이 예술로 채워지는 건 마을회관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수식어가 익숙한 이곳이 예술인들의 전시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빼뻘마을 프로젝트를 여는 예술가들에게 많이 열렸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이곳은 회화·조형을 전공 중인 권도윤 작가를 비롯해 작곡을 전공하는 김기원 작가와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 중인 정보람 작가, 회화·조형을 전문으로 하는 황세연 작가가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빼뻘마을을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전했다. 1층 고산경로당의 입구를 지나 2층에 오르는 층계에 이르자 먹구름같이 어두운 음악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는 김기원 작곡가의 창작곡으로 예술가들이 빼뻘마을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막막하고 두려웠던 심정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2층에 도착하자 바닥에는 종이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왔던 수많은 아이디어와 차마 실현되지 않은 의견이 적힌 종이들이다. 빼곡히 메운 종이들에서 빼뻘마을을 향한 그들의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회관 내부에서는 예술가들이 빼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주민과 만나고 느꼈던 여러 감정과 에피소드를 담은 영상물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두려움과 막막함을 뒤로하고 어느덧 빼뻘에 스며들어 깊은 고민을 이어가는 그들의 이러한 여정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빼뻘마을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제공한다. 결국 이들의 고민은 빼뻘마을의 고유종을 탄생시켰다.회관 중심에는 이들이 제작한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든 빼뻘 마을만의 고유종 나무로 주민과의 생성한 유기적인 관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네 작가가 협업 작품이다. 이 나무는 예술가와 마을 주민이 함께 글씨를 썼던 화선지를 비롯해 빼뻘마을에 있는 나무 조각과 인형, 흙 등을 섞어 제작하였다. 빼뻘마을의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의 발자취를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이들은 마을주민과 협업으로 이뤄낸 빼뻘마을 프로젝트가 나무의 뿌리가 되어 마을회관의 천장을 뚫고 올라가 희망으로 퍼져나가길 바라는 바람으로 이 씨드 볼트(씨앗과 저장소의 합성어)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미래를 위해 지금의 종자를 남긴다’라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해 작가들이 머물렀던 4개월이라는 기간을 작가들의 시점으로 관람자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면서 "마을 주민과 참여 예술가 모두에게 이 프로젝트에 대한 여운과 의미를 남기기 위해 공간을 활용한 인터렉티브 믹스미디어 작품으로 고안하였다”고 밝혔다. ‘모든 다름 모든 낯섦’ 전시회 투어는 마을회관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을회관 앞에서는 여러 명의 마을 주민이 나서 빈대떡을 지글지글 굽고 있었다. 빼뻘마을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빼뻘마을의 축제였다.빼뻘마을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김현주 · 조광희 작가는 “마을 프로젝트는 열려 있는 삶의 장소가 예술의 무대가 되는 곳”이라면서 “예술작품의 바탕이 된 마을이라는 삶의 장소가 예술의 터가 되었다는 부분을 같이 바라봐 주시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어 “빼뻘마을 프로젝트를 통해 왜 예술이 마을에서 진행되어야 하고,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예술은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 필요성을 공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더 많은 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