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우리에게 고민이라는 편지를 계속 보내온다. 편지를 받아 든 우리는 그 무게에 반응하며 인생의 굴곡을 그려 나가고 그 굴곡 사이로 답장을 채워 나간다. 이러한 고단한 여정 가운데 우리는 마음을 터놓고 들어줄 누군가를 고대하기도 한다. 여기 우리가 마주한 그 고민에 귀를 기울이며 위로를 전하는 이가 있다. 바로 한우림 실험지기(이하 ‘한 실험지기’)다.“저처럼 마음 털어놓을 데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듣기와 공감을 통해 의정부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어요.”한 실험지기는 자신의 실험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녀는 지난 6월 한 달 동안 의정부 정보도서관과 민락동에 위치한 카페 다미아에 우편함을 설치, ‘익명고민우편함:의정부’라는 제목으로 백만원실험실을 진행했다.‘익명고민우편함:의정부’는 의정부 내에 우체통을 설치하고, 익명으로 고민을 적은 시민에게 답장을 보내는 실험이다. 한 실험지기는 “의정부를 정 있는 도시, 사람 냄새 나는 도시로 만들고 싶었다”며 서로 소통하고 위로하는 것을 ‘정’이라고 정의했다. 실험명 ‘익명고민우편함:의정부’에 ‘정’자를 넣은 것도 이런 이유다.한우림 실험지기는 대학교를 휴학하고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마음과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생겼다. 터놓고 고민을 말하며 위로받고 싶었던 한 실험지기의 바람은 어느덧 이 실험의 출발점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했다”는 그녀는 “나만 고민하고 방황하는 게 아니라는 느낌도 받고 싶었다”며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이에 시민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익명’이라는 장치를 넣었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사색해 볼 수 있는 공간에 우체통을 설치했다. 한 실험지기가 직접 제작한 카드뉴스로 인스타와 오프라인에 실험을 홍보하였고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그렇게 우체통을 설치하고 6월 한 달이 지났다. 실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편지나, 편지 배달 서비스, 혹은 민원을 쓴 편지들을 제외하고 일과 사랑, 관계, 진로에 대한 고민을 적은 14통의 편지가 모였다. 답장우체부답장을 쓰는 자원봉사자들은 인스타그램과 당근마켓, 지인 홍보로 모집하였고 20대부터 50대 중년까지 총 7명의 답장 우체부가 모였다. 답장 우체부들은 지난 6월 30일 카페 다미아에 모여 고민 편지 14통을 서로 돌려 본 후 답장을 쓸 수 있는 편지를 각자 2통씩 골랐다. 해당 편지를 고른 이유를 나누고 어떻게 위로하며 편지를 쓸 것인지 방향도 함께 고민했다.“깊이 생각하며 진심을 담아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편지 형식이 마음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라는 한 실험지기는 “전문적이지 않은 어설픈 상담은 상처와 부담을 줄 수 있어 공감과 지지를 바탕으로 답장을 적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한 실험지기는 ‘답장 우체부 3가지 답장 원칙’을 정해놓았다.첫째,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 데 정답은 없다.둘째, 공감과 위로, 지지에 초점을 맞춘다.셋째, 본인의 경험을 함께 적는다. ‘저도 그랬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와 같은 공감으로 사연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전한다.이러한 원칙을 고수하며 답장 우체부들은 한 자씩 답장을 적어나갔다.“답장 우체부들이 자기 경험과 아픔을 서슴없이 나누어 주시고 하고 싶은 말을 가득 담아 여러 장의 답장을 쓰며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는 한 실험지기는 “답장 우체부들이 있어 이 실험이 가능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답장 우체부들 역시 답장을 적는 내내 오히려 자신이 위로받았다고 전하며 자신과 같은 고민을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다는 느낌에 인류애를 느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익명의 고민 우편함: 의情부’와 같은 사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답장 우체부들의 바람은 한 실험지기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하였다. 위로가 가득 담긴 이들의 답장은 7월 하순, 고민을 적었던 시민들에게 전달됐고 답장을 받은 시민들은 그 후기를 남겼다.‘오늘 학교 끝나고 집에 오니 편지가 왔더라고요. 그래서 뭐지? 하고 열어보니 제가 시험 1주일 남았을 때 쓴 고민 편지 답장이 왔더라고요! 감동으로 눈물이 날 뻔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몇 번이고 다시 읽어봤어요. 잊고 있다가 이렇게 받으니 너무 기쁘고 진짜 큰 힘이 되었어요.’‘저의 고민에 대해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진심이 담긴 공감과 위로를 건네주셔서 감사합니다.’‘익명으로 제 고민을 털어놓으니 더욱더 솔직하게 적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조언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 큰 힘이 될 줄은 몰랐어요. 다음에 저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조언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시민들의 후기는 한 실험지기에게 가장 소중한 결과물이다. 한 실험지기는 "제가 기획한 실험이 의정부 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고 하니 제가 오히려 큰 위로와 격려를 받은 듯 하다”면서 “이번 실험을 통해 저 또한 더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마음이 따뜻해지면 사람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서로 소통하고 위로하는 순간이 모여 마음이 뭉클해지고 천천히 마음을 데워 따뜻하게 만드는 그것이 바로 정 아닐까? 한우림 실험지기의 말처럼 정이 잘 어울리는 의정부가 되길 기대한다.